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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노하우 | 몸값 높이려면 약점을 종이에 적고 고쳐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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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1-24 11:01 조회12,8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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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높이려면 약점을 종이에 적고 고쳐 나가라”


1961년 5·16혁명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은 김영상(2003년 작고)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조용히 만났다. 둘은 1917년생 동갑내기. 독대를 마치고 온 김 국장은 다음 날 신문 1면을 이런 내용으로 만들었다. '박 의장, 정권을 민간에 이양할 듯'. 이틀 뒤, 검은색 지프가 김 국장의 서울 효자동 집 앞에 섰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그는 권력기관의 조사를 받느라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 어디서: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
● 무엇을:미국식 조찬(3만3000원), 김 사장은 주스는 토마토로, 계란은 스크램블로 주문했다.


24일 오전 7시30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 김진수(58) CJ제일제당 사장과의 조찬은 아버지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김 사장은 김영상씨의 둘째 아들이다. “당시는 한 신문사가 아침과 저녁, 두 번 신문을 발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정신 없이 사셨지요.”


신문기자의 아들다운 걸까. 김 사장은 “아버지가 기자여서 그런지 글 쓰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CJ 내에서도 그는 수려한 글쟁이로 소문나 있다. 2005년부터 모든 임직원에게 매달 e-메일로 보내는 '대표이사 메시지'만 봐도 그렇다. 그냥 '너희들 일 잘해라'는 식이 아니다. 울림 있는 메시지를 담는다. 최근엔 '자기 몸값 높이는 비법'에 대해 썼다. 개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종이와 펜부터 꺼내라. 자기가 잘하는 것을 왼쪽에 적어라. 잘 못하는 것은 오른쪽에 적어라. 그러곤 잘 못하는 것부터 고쳐나가라. 사람은 강점보단 부끄러운 점, 약점이 더 많은 법.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정제된 언어로 적어 놓는 것과 머릿속으로 스쳐가는 것은 다르다'.


지난달엔 '안중근 의거 100주년'과 관련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안 의사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젊은 나이에 의연하게 목숨을 던졌다”며 “그건 소신이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잘못된 길을 가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원과의 소통. 이 같은 'CEO 메시지'는 그의 대표적인 경영철학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경영자가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하게 된다. CJ 정길근 부장은 “메시지를 읽고 나면 회사 사정을 좀 더 알게 되기 때문에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이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그 자신이 삼성그룹에 근무했던 시절 유명한 사내 강사였던 덕도 컸다. 그는 “가장 빈번하게 강사로 나섰던 사람 중 하나였다”고 술회했다. 그런 경험들이 지금 임직원들과 자주 의견을 교환하는 최고경영자가 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김영상 기자가 독자 입장에서 기사를 썼듯, 그 역시 소비자가 갈구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경영기법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것이 지금까지 인기를 끄는 즉석밥 '햇반'과 과일형 디저트 '쁘티첼'이다. 사실 그는 마케팅 전문가이기도 하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판촉 같은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그는 “잠시 동안이나마 외국 기업 SC Johnson Korea(한국존슨)에 근무한 것은 보다 폭 넓은 마케팅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식품의 안전을 강조하는 것 역시 그의 철학이다. CJ는 97년 식품업계 최초로 식품안전 전문부서(CJ식품안전센터)를 만들었는데, 그는 매달 한 번씩 'CJ식품안전커뮤니티'를 주관한다.


그러나 김 사장은 어찌 보면 이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교훈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아버지는 55세를 끝으로 신문사를 떠나 서울시 역사 연구에 몰두했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훑으며 메모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기간이 무려 25년쯤 된다. '서울 600년사' 편찬위원장까지 지냈을 정도다. 은퇴 후에도 서울역사광으로서 의미 있는 여생을 즐긴 셈이다. 김 사장은 말한다. 이게 바로 자신을 포함한 우리들의 롤(역할) 모델이라고. 그는 “여생은 잔반 처리하듯 보내는 게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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